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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2023년 보건간호 활동 우수사례 공모 수상작-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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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보건간호사회
  • 작성일 23-10-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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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항상 괜찮다

 

진주시보건소 지방간호주사보 이한바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자리에도 새살이 돋듯, 지역 보건 간호사들도 각자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 지역 곳곳으로 주민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주로 농촌지역의 경로당,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혈압·혈당 측정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만성질환자 투약 관리, 보건교육, 그리고 그동안 별일 없으셨는지 안부들을 묻는 일이 주된 일이었는데, 지역 어르신들도 그간 만나지 못했던 손자 손녀뻘 손님들이 왔다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어느 날 한 지역의 이장님께서 오늘 꼭 방문해줬으면 좋겠다며 본래 일정보다 앞당겨 연락을 주셨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준비해서 경로당에 방문하였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보건교육을 마치고 혈압을 측정하는데 혈압이 지속적으로 높게 측정되는 분이 계셨다. 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어 기록을 살펴보니 꾸준히 혈압이 상승하는 추세였고, 다른 임상증상들이 있는지 여쭙고, 불편한 기색이 있는지 살폈다.

“OO, 두통이 있거나 눈앞이 흐리게 보이거나 다른 불편한 증상들이 있나예?”

하고 묻는 내 질문에 어르신이 허허 웃으시며,

내 나이 되면 안 아픈데 없지 ~ 요즘 골 아픈게 좀 있어서 그런데 내는 괜찮다 원래 혈압이 높게 나오고 그란다

하시며 원래 혈압이 높은 사람이고 평소에 혈압약도 안 먹는 건강한 사람이라 괜찮다는 어르신들 단골멘트로 답하셨다.

 

이런 증상들과 높은 혈압으로 비추어볼 때 뇌졸중 전조증상일 수 있다며 당장 병원진료를 보셔야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주변에 계시던 어르신들도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허허 웃기만 하며 연신 걱정말라고 하시던 어르신도 조금씩 동요되는 눈빛이었고, 그 틈을 타서 아드님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저희 아버지가예? 평소 지병 하나 없으신 건강하신 분인데

아드님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당황하셨고, 통화를 이어받으신 아버님도 별일 아니다 바쁜데 미안타하시며 전화를 서둘러 끊으려 하셨다. 답답하고 걱정이 앞섰다. 어르신을 두고 이대로 돌아서면 안될 것 같았다.

 

다행히 아드님께서도 오랫동안 아버지를 뵙지 못했던 차에 잘 되었다며, 지금 바로 모시고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어르신을 아드님께 인계(?)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돌렸다.

 

며칠 후에 전화가 한 통 왔다. 혹시나싶어 병원에 인계할 내용이 있을 수도 있어 혈압관리수첩에 연락처를 적어두었는데, 그걸 보고 연락하셨다고 했다.

대학병원에가서 검사를 했더니 뇌출혈 초기였고, 다행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제때 오셔서 별다른 후유증 없이 치료 잘 받으셨다고 한다. 아드님께서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며, 항상 아버지가 괜찮다고만 하셔서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하셨다.

 

이상했다. 분명 경로당에 다른 어르신들 말로는, 며칠동안 계속 머리가 아프다하시고 뭔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막연하게 불안해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지켜보던 이장님이 일정보다 앞당겨서 방문 요청을 하신거랬는데...

 

후에 경로당에서 다시 만난 어르신은 자랑스럽게 약도 잘 먹고, 혈압 조절도 잘 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있게 혈압 측정에 임하셨다. 그땐 대체 왜 그렇게 진료 안보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냐며 묻는 말에 혹시나 너무 큰병일까, 자식들에게 이런 걱정조차 짐이되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항상 괜찮은 아버지로 계셨다고 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사실, 낯가림 심한 내가 어르신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안부 여쭙고, 시시콜콜한 농담도 건네고 하는 일이 버겁기도 했다. 나에게는 그저 업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가족들간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마음을 전하기도 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이장님이 지난 보건교육 때 들은 뇌졸중 전조증상을 기억하시고는 제때 SOS를 쳐 주셨고, 이런 증상일 때 병원에 가야한다고 입을 모아 재촉해 준 이웃분들까지 모두 어르신을 구해 낸 영웅들이었다.

지금도 이때의 일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따뜻한 일인지. 당장 눈앞의 성과로 나타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지역주민들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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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보건 간호사가 경로당 어르신들 대상으로 만성질환 관리 및 기록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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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실 때 꼭 지참해서 가시라고 말씀드리는 만성질환 관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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