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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2023년 보건간호 활동 우수사례 공모 수장작-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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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보건간호사회
  • 작성일 23-10-1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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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할머니의 소망

 

강원도 횡성군보건소 고정근

 

오매~ 생님 오셨네.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고. 우리 똘이가 짖는 게 다른 때와 달라서 나와 봤더니 우리 선생님이네!”

오랜만의 방문에 최할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울먹이시며 나를 꽉 끌어 안으셨다.

가 선생님 주려고 옥수수 농사를 지었는데 안와서 울었잖아

집에 들어서자마자 삶아 얼린 옥수수부터 한 보따리 싸시며 연신 반가움을 표시하신다.

깨끗해진 집안, 생기를 되찾은 최할머니를 보며 나는 할머니와 보낸 지난 시간을 다시 떠올려 본다.

 

뇌경색 이후 인지가 많이 떨어지고 거동이 불편해 치매안심센터 내소가 어렵다는 보건지소 직원의 의뢰로 방문하게 된 할머니와의 첫 만남!

그러나 당장 치매 검사보다는 척추압박골절로 인한 통증과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함에도 며칠 와있는 자녀가 개인 사정으로 오늘 올라가게 되어 혼자 지낼 수 밖에 없는 할머니의 상황 해결이 더 시급해 보였다.

급하게 면사무소 맞춤형 복지팀과 동행하여 상담 후 긴급 돌봄 서비스와 장기 요양 서비스도 신청했다. 하지만 당장은 치료가 시급해 보이는 상황이라 보호자에게 병원 입원을 권유하였지만 자녀들의 병원비 부담과 요양원에 보낼까 두려워하는 할머니의 거부로 계속 설득해도 설득이 안되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음날 할머니께 대여할 워커와 영양보충음료를 들고 찾아갔지만 밤새 구토로 탈수증상이 심해진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2주일 뒤 할머니의 퇴원 소식을 자녀의 전화로 듣고 나는 할머니를 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하고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관리해 드리기로 했다.

퇴원한 할머니는 이전보다는 나아 보였지만 여전히 혼자 생활하시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약이 많아 이것저것 막 드시는 할머니에게 약 달력을 가져가 정리해서 투약 교육도 하고, 허리보조기를 답답하다고 빼고 다니시는 할머니에게 때로는 화도 내는 무서운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댁을 방문하니 구토와 설사로 탈수 직전의 상태로 누워 계셨다. 놀란 나는 마트에서 급한 대로 보리차와 이온음료를 구입해서 드시게 하 가장 가까이 사는 보호자에게 연락해 병원에 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누가 나한테 이렇게 해 주겠어.”

정신을 차린 할머니가 담담히 이야기를 꺼내셨다.

주위에 있던 동네 사람들도 하나둘 요양원 가면 돌아오지 않고 난 정말 요양원은 가기 싫어 내 자식들도 다 먹고살기 힘드니 신세도 지기 싫고... 난 이렇게 그냥 집에서 살고 싶은데 점점 정신도 없어서 큰일이.”

내가 살던 곳에서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신세 지지 않고 사는 것이 모든 어르신들의 소망인 듯 싶다.

할머니를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자녀 분들과도 수시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저희 어머니가 망상증세가 생기신 것 같아요. 치매검사를 얼른 해야 할 것 같은데.”

. 제 어느 정도 거동도 가능해지셨으니 저희가 먼저 집에서 검사한 후, 의사 대면 진료 때는 모시고 나오시면 돼요.”

선생님 장기요양등급 의사 소견서는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그것도 보건소에 내소하시면 제가 도와 드릴께요.”

 

결국 치매 진단을 받게 된 할머니에게 나는 내가 가진 정보를 총 동원하여 상담을 하고, 직접 그 과정을 진행해 드리기도 했다. 이 후 장기요양등급을 받고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기 시작하셨으며, 낙상을 예방하기 위해 장기요양기관과 연계해 집 이곳저곳에 안전바도 설치를 해 드렸다. 그리고 치매안심센터에서도 직접 센서등과 목욕탕 미끄럼방지 매트도 설치했다. 할머니의 집은 할머니가 혼자 살아도 안전할 수 있는 집으로 탈바꿈되었다.
선생님은 나를 살린 사람이야~”

 

이젠 허리를 꼿꼿이 하고 걸을 수 있게 된 할머니가 나만 보면 하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렇게 들깨를 많이 심으시면 어떡해요. 허리 다시 아프면 또 입원하셔야 해요. 이 집에서 백 살까지 사셔야죠.”

백 살까지 사셔야 한다는 말에 놀란 듯 눈을 흘기시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신다. 정도면 나와 할머니와의 만남은 해피엔딩인 것 같다.

 

우리 치매안심센터에서는 경증치매대상자들을 위한 쉼터 프로그램이 있다. 저마다 사연도 많고 고생도 많이 하신 분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배움도 적어 쉼터에서 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실 때마다 다 늙어서 이런 것도 해본다며 너무 좋아하실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기억을 조금씩 잃어 갈 때쯤에야 비로서 마주하게 된 새로운 경험, 몰래 주고 가신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 한 장, 집에 모셔다 드릴 때 내 얼굴에 본인 얼굴을 비비시는 고마운 마음에 나는 자꾸 눈물이 난다.

우리의 부족한 능력과 관심만으로도 그분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으실 수 있음에 더 큰 위로와 감사함을 느낀다.

오래오래 그곳에서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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