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이별, 그리고 고마운 시간들(전주시보건소 김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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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보건간호사회
- 작성일 25-09-2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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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예정일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른다.
몇 년 전부터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마음이 정돈되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기게 된다.
그 하늘 아래에서 나는 참 많은 시간을 살아냈다.
수많은 사업계획서와 회의록, 민원 응대와 현장 점검 속에서 흘러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30여 년 전 보건소의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처음 주민 건강관리 계획을 짜던 그날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새 나는 퇴직을 앞두고 있다.
간호직 공무원으로서의 삶은 병동의 분주함과는 또 다른 결의 헌신이었다. 주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예방접종을 독려하고,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밤새 수정하며, 때로는 경로당에서 혈압을 재고, 때로는 외딴집 어르신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내 손끝이 닿은 곳은 병상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퇴직을 앞두고 마음은 묘하다. 홀가분한 듯하면서도, 왠지 허전하다. 더 이상 새 사업을 기획하지 않아도 되고, 예산 걱정에 머리를 싸맬 일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이 내 삶의 일부였기에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 주민들과 나눈 짧은 인사, “덕분에 건강해졌어요”라는 말 한마디가 내게는 큰 보람이었다.
나는 늘 조용한 자리에서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왔다. 눈에 띄지 않지만, 꼭 필요한 존재로. 그 역할을 내려놓는 지금,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이 자랑스럽다. 간호직 공무원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수많은 삶을 지켜냈고, 그 속에서 내 삶도 단단해졌다.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조금 느리게, 조금 더 여유롭게. 그리고 여전히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볼 것이다.
그 하늘 아래에서 나는 다시 나를 찾고, 또 다른 삶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늘 ‘공공의 건강’을 향한 애정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 내가 간호직 공무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작은 배려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걸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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